<음악 그 우주적 진리>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 교향곡과 같은 명곡을 악보에만 가두기엔 너무 위대하다. 무대 위에서만 연행하기도 아깝다. 그걸 단순히 소리 예술로만 보기엔 아쉽다는 것이다.
명곡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진리로 보자. 음악을 우주적 진리로 확장해보자는 것이다.
작게는 걸음 조차도 베토벤 5번 교향곡 첫 모티브의 리듬으로 걸어보자. 아니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0의 첫 두 마디의 윤곽을 제스쳐처럼 머리카락을 쓸어내려보자.
더 나아가 내 일상을 time sheet로 정리했을 때 결과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고 인상적인 M.Ravel의 Bolero 리듬과 일치할 때의 쾌감을 맛보자.
물론 너무 유치한 1대1 대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고차원적인 예를 들자.
낭만주의 시대의 반음계적인 불협화음이 줄곧 나오며 느껴지는 긴장감 그리고 마침내 협화음이 나올 때의 이완.
이 흐름을 일상 속에서 문제를 마주할 때 그리고 그것이 연속될 때의 긴장과 해결할 때의 이완 속에서 재확인하며 살아보자는 것이다.
말 안 듣는 부하 직원의 하극상 그에 따라 오르는 혈압과 여전히 반성하지 않은 그의 모습. 하지만 그 이후 갑작스럽게 개과천선하여 안도감을 주는 데에서 C: V24/F V56/Bb V24/Eb V56/Ab.........V24 I6 V34 I.....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음악에서의 도식을 세상 일반에서 보편적으로 재확인할 수 있는 패턴으로 인식하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 패턴은 단순하게는 생활에서 문제와 해결, 복잡하게는 영적 체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음악이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진리는 엄밀하고 정교하게 가공한 언어로 드러나는 아니냐고. 그래서 순수한 형식과학으로서 수학이나 수리언어로 표현한 물리가 진리라고 말한다.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음악 역시 엄밀하고 정교하게 가공된 형식 아니냐고. 아니면 이런 주장도 가능하다.
진리를 궁극적인 세상의 이치라고 한다면 그건 여타 지식과는 다른 특별한 형태로 인식되지 않겠냐고. 이성과 논리는 물론 아주 훌륭한 지식을 쌓는 수단이다. 또한 나는 그를 통해 인류가 축적한 이공계, 인문사회계의 지식이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오히려 경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궁극의 이치라고 하면 이성과 논리가 아닌 뭔가 다른 형태 즉 느낌과 직관으로 다가오는 무언가 차라리 영적이고 감정적이며 심미적인 황홀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위험한 생각이지만 죽기 전에 한번 쯤은 MaJak을 하고 싶다. 모차르트 교향곡을 들으면서 MaJak을 해보고 싶다. 그 리듬과 화성 그리고 선율의 shape과 함께 '새하얀 MaJak'을 음미하고 싶다. 그렇게 우주적 진리가 된 음악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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