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답정너가 비판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통이 없고 정한 의견을 밀어붙이기에다. 답정너를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 자주하면 관계가 파괴될 것이다.
그런데 답정너는 나 자신에게도 할 수 있다. 자기 합리화 기제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두고 점사를 보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반복시행하는 것, 현실과 희망 사이의 괴리가 있을 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 등도 들 수 있다. 셀프 답정너는 대단히 지양해야 할 행동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논리적으로 하지 말아야한다는 걸 알면서 마음 속으론 그걸 하는 게 편해서다. 현실 도피요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늘 현실을 직시만 할 순 없는 것이다. 도망도 왕왕 친다.
이상의 얘기를 할 때 친구 A가 떠오른다. 산적한 과제를 앞두고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알리고 팔아재낄 생각을 안한다. 무해한 자기 세계를 만드는 데에 열중한다. 아무리 힘든 현실을 겪어도 결국은 자기폐쇄적인 유토피아로 돌아온다. 그야말로 ‘답정너’이다.
난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하지 생각한다. 예술을 전공하며 이로 수익도 창출해야지. 그에 앞서 전공에 보다 충실하게 공부해야겠다 싶었다. 나는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의 조성음악을 감상하곤 했다. 조성음악 작품에선 종종 조바꿈이 일어난다.
근데 아무리 조성이 바뀌어도 첫 조와 끝조는 같다. 최초의 조성과 최후의 조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다시 원조로 돌아온다는 규칙을 가진 조성음악은 사실은 그 자체가 답정너의 끝판왕 격이다. 아무리 가장 거리가 먼 조성으로 조바꿈을 해도 결국은 원조로 돌아온다.* 사실 나야말로 답정너에서 자유롭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그 자체였던 것이다. 상당히 울적했다.
이렇게 우울할 땐 나는 PC방에 간다. 워크래프트 3을 종종 플레이한다. 치트키를 치고 게임한다. 그러면 나는 무제한에 가까운 자원을 바탕으로 플레이하기에 매번 이긴다. 결말은 정해져있다. 나의 승리이다. 그렇게 또 나는 ‘답정너’를 한다.
*조성음악의 이러한 특성에 착안해 탁월한 분석법을 제시한 음악이론가 하인리히 쉔커의 아이디어와 관련한 기악 형식 분석에 대한 글은 다음 링크를 참고할 것
https://duwldnjs.tistory.com/m/239
[이론 1] 나는 이번 학기에 수강한 “음악형식과 분석1”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I. 들어가며1. 동네 피아노 학원의 ‘소나티네’ 그리고 세 부분으로 이뤄진 성장 서사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에서 치는 대표적인 음악은 소나티네이다. 물론 바이엘, 체르니도 연습
duwldnj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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