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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류학, 음악미학 탐구

[문화 9] 중세 음악 공부하면 복무시절 떠오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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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의 기원이 중세 가톨릭 성가라고 한다. 근데 이거 보다 보면 군악대 생각난다.

직접촬영: 일병시절 셀카


1.

높으신 분들이 오시면 우리 군악대는 의전으로 군가나 행진곡을 연주했다. 장성은 그 음악을 배경 삼아서 입장하신다. 중요한 건 장성이 음악에 맞춰 걷는 게 아니라 음악이 장성에 맞춰준다는 거다.

걸음이 느리다 싶어 입장하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시간을 끌어주려고 되풀이해준다. 발이 빨라 곧 들어오실 것 같으면 뒷 부분은 생략한다.




2.

가톨릭 성가에도 비슷한 게 있다. 사제가 입장할 때 연주하는 음악이 입당송이다. 입당송은 안티폰-시편-안-소영광송-안 순으로 연주하는데 사제가 빨리 오면 중간부분 생략한다고도 한다.

물론 대개의 경우는 사제의 위엄을 드러내려고 그러는 지 일부러 천천히 늦게 한참 뒤에 온다고 한다. 그래서 생략보다는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앞에 추가적인 음악을 갖다 붙이며 확장한다.

3.

이 확장의 과정에서 서양음악의 발전이 이뤄졌고 그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는 게 이번 과목 '음악형식과 분석2'의 수업 내용과 시험범위다.

앞서 얘기한 입당송 연주 순서는 중세 성가 악보를 읽는 순서하고도 연관되니 이 부분이 시험에 나올 것이다.



4.

국악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 종묘제례악에서 왕, 세자, 영의정 등이 조상신에게 술잔을 올릴 때 악대가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데 진행 속도에 따라 생략하기도 반복하기도 한다.



5.

이처럼 리츄얼 진행 상황에 따라 음악을 일부 생략, 반복하는 것은 군, 가톨릭, 유교 제례악 등 의전 음악 연주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독특한 특징이다.

꽤 내게 인상적이었다.

6.

예술음악만 하는 나는 음악이 진경이고, 사람이 배경이었다. 사실 전공으로서 음악을 공부하는 데 악보만 있으면 되는 거지 딱히 그걸 듣거나 연주하는 사람은 고려하지 않았다. 작곡가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작품 텍스트 그 자체였다. 수용자나 연주자나 실제 연주 상황과 방식, 장소, 사회문화적 맥락, 기능, 영향은 딱히 공부할 때 생각 안 했다.

복무를 겪고 나니 음악이 달리 들리고 보인다. 연주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이 음악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까? 왜 여기서 이때 누가 어떻게 이 음악을 연주하는 거지?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리츄얼로서도 음악을 대하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7.

물론 이젠 너무 리츄얼 쪽으로만 음악을 대하는 것 같아서 다시 작품 중심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즉 그레고리오 성가 입당송은 사제가 입장할 때 연주하는 배경음악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한편 '네우마 기보법으로 적은 교회선법으로 구성된 라틴어 가사를 지닌 단성 성가'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마치 육군가가 군단장 이취임식 의전음악에서 쓰이는 것도 중요하다만 'F Major에 4박자로 이뤄진 곡'이라는 사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양자의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8.

중간고사 공부하다가 시험 범위를 보며 문득 든 단상으로 적은 글이다. 시험까지 4시간 남았다. 집중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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