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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탐구

[음악사 4] 고음악 음가 기보의 기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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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4세기 음가 기보의 기호학>

직접촬영: 수제천 악보 필사한 것


I. 들어가며: "악보는 음악이 아니다."

"악보는 음악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연주 실제, 공연 맥락 등을 악보가 담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음악에서 악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전통적으로 서양 문화권에서 작곡, 작곡가, 작품을 중시 여긴 나머지 이를 드러내는 악보와 음악을 하나인 양 취급한 점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음악에 있어 기보의 역사를 공부하고자 한다. 특별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음악과 모테트를 중심으로 작곡가들이 시기별로 음가, 리듬을 어떻게 표기했는가에 관해 추적하고 이를 오늘날 기보과 비교하고자 한다. 이때 기보법 변화의 과정에서 일관된 흐름을 관찰할 수 있으며 이를 영미권 기호학의 창시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의 기호 분류 이론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II. 중세,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오늘날 음가 기보법

1. 그레고리오 성가~장식 오르가눔


클래식 음악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정리, 편찬된 시기엔 리듬의 음가를 기록되지 않았다. 상대적인 음높이만 기보되어 이 당시 리듬을 어떻게 부여하여 연주했는지는 학자들도 알 수 없다.

이는 단선율 성가였던 그레고리오 성가를 변형하여 겹쳐 부르던 병행 오르가눔, 자유 오르가눔, 장식 오르가눔 시기도 마찬가지이다.

즉 11세기까지는 음가나 리듬을 악보로 드러내지 않았다.

2. 노트르담 오르가눔

12세기 노트르담 악파는 리듬을 6개 선법으로 유형화하여 음가를 드러냈다.

예를 들어 1번 선법은 장단장단, 5번 선법은 장 장의 격을 가진다. 악보 상 '어느 선법을 사용하는가?'는 몇 개의 음을 하나의 '리가투레'로 묶었느냐에 따라 약정한다. '여러 개의 음을 묶는 리가투레'는 크게 3개를 묶는 N자 및 ㅅ자 그리고 2개를 묶는 180도 돌린 c자 모양이 있는다. 예를 들어 리가투레 NCCCC처럼 각각 3,2,2,2,2개씩 음을 묶는 리가투레가 이어지면 장단장단의 음가를, NNN이나 Nㅅㅅ과 같이 각각 3,3,3개씩 음을 묶는 리가투레가 이어지면 장장의 음가를 가진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즉 12세기 후반 노트르담 악파는 리가투레 기보로 묶는 음 갯수의 약정을 통해 유형화된 리듬을 드러냈다.


3. 프랑코 모테트

13세기 중반엔 여러 레벨의 서로 다른 음가를 지닌 음표체계를 바탕으로 음악을 기보했다. 이때 한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3배씩 음가가 늘었다. (단, 롱가와 롱가의 한 레벨 위의 두플렉스 롱가 간 음가 차이는 2배) 이는 오늘날 음표 체계가 4분 음표와 그것의 한 레벨이 올라간 2분음표 사이의 음가 배수 차이에서 알 수 있듯 한 층위 당 2배씩 음가가 느는 점과 비교된다.

이러한 3분법 리듬분할은 당시 기독교 교리인 삼위일체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되며 앞서 말한 최장 음가를 지닌 두플렉스 롱가와 차장 음가를 가진 롱가 사이의 2분할을 제외하고 롱가와 브레비스, 세미브레비스 모두 3분할의 리듬체계를 가진다.

즉 13세기 초중반의 모테트는 기독교 교리의 상징과 연관된 3분법적 리듬 분할을 따랐으며 총 4개의 음표 종류가 쓰였다.


4. 아르스 노바

14세기 기보엔 13세기의 4개 음표에 더 잘개 쪼갠 음가를 지닌 '미님'이 추가되어 총 5개의 음표 종류를 사용한다. 이에 따라 두플렉스 롱가, 롱가, 브레비스, 세미브레비스, 미님이 쓰이며 3분할과 동시에 2분할도 공식적으로 허용하며 오늘날의 박자체계의 원형을 형성한다.

즉 브레비스와 세미브레비스 사이에도 3분할 혹은 2분할이 가능하며, 세미브레비스와 미님 간에도 3분할 또는 2분할을 할 수 있는데 그 조합에 따라 총 4가지 경우의 수가 나타나며 해당 박자체계를 표기하는 방식이 있다.

브레비스와 세미브레비스 간 3분할 시 ㅇ, 2분할 시 C, 세미브레비스와 미님 간 3분할 시 •, 2분할 시 별도 표기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이하와 같은 4가지 박자체계가 완성된다. 이는 현대식 박자체계의 각각 8분의 9박자, 4분의 3박자, 8분의 6박자, 4분의 4박자에 해당한다.

즉 아르스 노바 시기는 리듬 분할에 3분법뿐 아니라 2분법도 공식적으로 허용되어 현대식 박자 체계 형성의 근간이 되었고 총 5개의 음표 종류가 쓰였다

5. 오늘날

오늘날은 각 레벨마다 2분할된 음표 체계를 갖춘다. 음표 이름은 한 마디 전체의 음가를 차지할 땐 온음표, 그 이외엔 대개 2^n분음표라고 표현한다. 이때 2(^1)분음표는 하얀색 머리를 가지고 그 이외의 2^n분음표는 검은 머리를 가지는데 꼬리를 하나 가진 2^3분음표 이래의 2^n (3<n)분음표부터 꼬리가 하나씩 추가된다. 이때 n의 값은 이론상 무제한적으로 커지므로 잘개 쪼개 분할하고자 하면 그만큼 n을 늘려 표기하고 2분할 이외의 n분할하고자 할 땐 n연음표 방식으로 표기한다.

즉 오늘날엔 리듬분할은 2분법에 기반하며 음표 레벨은 무제한에 가깝게 늘릴 수 있으며 기타 n분할시 잇단음표를 통해 드러낸다.

III. 찰스 샌더스 퍼스의 기호학
1. 퍼스의 기호 분류 이론

(1) 영미권과 대륙권의 기호 비교


퍼스는 영미권 기호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대륙권 기호학과 대비되는 영미권 기호학을 제시했다. 대륙권과 영미권 기호학의 차이는 기호를 구성하는 요소에서 알 수 있다. 즉 대륙권은 기의, 기표가 기호를 이룬다고 보며 영미권은 대상체, 표상체, 해석체가 기호를 구성한다고 본다. 기표는 기호의 감각적 측면이며 기의는 기표가 뜻하는 의미 개념이다. 대상체는 기호가 가리키는 것, 표상체는 기호, 해석체는 수용자가 그 기호를 보고 머릿 속으로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2) 퍼스의 기호 분류: 도상 지표 상징

퍼스는 대상체와 표상체가 어떤 관계를 맺는 가에 따라 기호를 크게 도상, 지표, 상징으로 분류했다. 도상은 닮음으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사과와 사과를 찍은 사진, 초상화 등을 예시 들 수 있다. 지표는 인과나 상관관계로 연결된 기호로 발자국, 연기(화재에 대한 기호로서)를 들 수 있다. 상징은 문화 관습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강'이라는 글자는 물이 흐르는 강과 닮지도, 물리적인 연관관계도 없다. 그런데 수용자들이 글자 강을 보며 물이 흐르는 강을 연결 짓는다. 이는 문화 관습에 의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상징의 대표적인 예시로 자연어 글자를 들 수 있다.

(3) 기호 실제의 도상, 지표, 상징의 성격 혼재

물론 모든 기호는 어느 정도 상징과 도상과 지표로서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한자는 상형문자에 기원했다는 점에서 대상과 닮음으로 이어지는 도상성과 동시에 자연어 문자인 만큼 상징성, 사진은 대상과 닮았다는 면에서 도상성과 촬영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지표성을 동시에 지닌다. 초상화 역시 도상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그 문화권 내에서 관습적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을 따르는 점에서 상징성도 있다.

III. 퍼스 기호학를 서양음악 리듬 기보법에 적용하기
1. 도상 개념 적용에 있어 자연과 사회문화 사이의 경계

II.절에서 논의한 서양음악의 음가 기보의 변천은 크게 노트르담 오르가눔 시기의 리가투레 약정에 의한 리듬선법, 4개 종류 음표의 3분할 체계, 5개 종류 음표의 2와 3분할 체계, 오늘날의 2분할 체계 순으로 정리할 수 있다.

기보법은 한 문화권 내에서 합의된 규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음악학자 서정은은 악보를 부분적으로 그림처럼 유사에 의해 대상을 지시하는 '도상'으로 볼 여지도 있으나 확언하긴 어렵고 이 부분 면밀한 추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도상'은 자연적인 닮음 관계로 이어진 대상체와 표상체의 기호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당연히 닮았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기호도 다른 문화권에선 이를 닮지 않았다고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 원근법에 의해 묘사된 농촌 풍경화를 서양 화법에 익숙한 사람은 농촌과 닮은 도상이라고 보겠지만 역원근법 그림에 익숙한 17세기의 조선인에겐 전혀 닮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기호를 대상과 자연적인 닮음으로 이어진 '도상'이라고 말하기에 한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규약을 서로 다른 모든 문화권에도 같은 방식으로 보편적으로 이해될 것을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 아닌가하는 면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러한 '도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자문화중심적 오류를 범할 여지를 전제하면서도 감히 나는 서양음악 기보의 변천이 상징에서 도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일반화하고 싶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기보법에서의 상징성이 약화되고 도상성이 강화되는 과정으로 얘기하고 싶다.

2. 내가 본 서양 리듬 기보의 기호학적 변천: 상징성의 약화, 도상성의 강화

2-1. 노트르담 오르가눔 시기: 리듬선법


서양음악에서 리듬을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시점이 노트르담 악파의 리듬선법이다. 이때는 리가투레를 묶는 방식과 실제 리듬 형태 사이의 관계는 전혀 인과적이지도, 닮지도 않았다. 즉 서양음악에서 리가투레를 통한 리듬선법을 익히려면 학습과 문화적 규약을 통해서 알아야 하며 이런 면에서 초기 리듬 기보는 도상성이 거의 없으며 상징성이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2-2. 아르스 안티쿠아: 3분할

두 번째 시점인 3분할 리듬 기보 시기를 보자. 이때는 두플렉스 롱가, 롱가, 세미브레비스, 브레비스 등 4가지 음표가 쓰이며 이때 반드시 그 음표가 쓰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는 만큼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3분할만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이유가 당대의 종교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컸고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통해 숫자 3의 상징성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런 만큼 역시 이 시기도 도상성보단 상징성이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리듬선법의 리가투레가 묶는 음의 개수 x과 음의 음가 길이 y가 자의적으로 연결되던 시기와 비교할 때 서로 다른 음표 사이의 위계화된 상대적 길이 차이를 통해 음가를 지정할 수 있는 '정률기보'는 서로 다른 유형의 음표 간의 음가 관계가 비교적 규칙적이며 이허 형성될 '도상성'의 기초가 된다고 본다.

2-3. 아르스 노바: 2분할과 3분할의 동시 허용

이 시기엔 미님이 음표 유형에 추가되어 두플렉스 롱가, 롱가, 세미브레비스, 브레비스, 미님의 5가지 음표 유형이 쓰이며 꼭 그 음표가 쓰여야만 하는 이유가 없는 자의적인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이전 아르스 안티쿠아 시기와 달리 종교적 교리의 숫자 상징성에 따라 한정된 3분할만 허용하는 규칙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기보 전반의 상징성이 약화되었다고 본다.

한편 정률기보가 갖는 도상으로의 성격을 유지하는 만큼 전술했듯 서양 리듬 기보의 상징성 약화, 도상성 강화의 흐름은 일관되게 파악할 수 있다.

2-4. 오늘날 기보법

"음표의 꼬리 개수가 늘어나면 그것의 음가가 절반씩 줄어드는 규칙"은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기보에도 상징의 성격이 있다.

한편 동시에 음가가 줄어들면 단위 시간 당 소리 내는 횟수가 늘어나며 리듬이 빽빽해진다. 이를 표기 하는 음표의 꼬리 개수 역시 점점 늘어나며 빽빽하게 꼬리를 적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동시대 정률 기보와 음가 사이의 닮음 관계를 볼 수 있으며 결국 강력한 도상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IV. 나가며. 상징에서 도상으로

이상으로 서양 음악의 리듬 기보의 역사를 살펴보고 각각의 기보에 퍼스의 기호 분류 이론을 적용해보았다. 결과적으로 서양 리듬 기보는 상징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때의 상징성은 비교적 음악 내재적 요소의 약정으로도, 당대 기독교 사회의 강한 종교적 영향력에 따른 특정 숫자에 관한 의미부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13세기에 등장한 정률기보를 기점으로 도상성이 생겨나고 강화됐으며 이후 상징성이 점점 약화되며 오늘날엔 도상과 상징의 성격이 혼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전동열. 기호학.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5.

허영한.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서울: 심설당, 2009.

Baur,John. 악곡분석을 통한 음악이론사. 서울: 계명대학교출판부, 2008.

Cook, Nicholas.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경기도: 곰출판, 2016.

학술논문

서정은. (2021). 소리와 기보체계 간의 경계 또는 관계에 대하여 : 음악의 문자학을 위한 기초적 고찰. 서양음악학, 24(2), 14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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