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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탐구

[음악사 2] 중세 세속음악의 서술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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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세속음악의 분류에 관한 단상: 중세 세속음악 파트에서 발견한 전형적인 서양음악사 서술 방식>

I. 들어가며: '서구 중세 세속 음악'

한 문화권에서 음악을 어떻게 분류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다. 쓰임새, 악기, 화성 등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어떤 문화권에서 그 음악을 의미 있게 분류하기 위해서는 기준을 잘 정립하려는 것이 필요한데, 역으로 한 문화권에서 음악을 나누는 기준을 살펴보면 그 사회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무엇을 중요시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양 중세 음악을 공부하려 한다. 서구 중세 시대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때이다. 그런 만큼 종교와의 연관 속에서 음악을 나눈다. '이 음악이 종교적 가사를 가지는가? 그렇다면 미사의식에 쓰이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 혹은 애초에 종교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지 않은 음악인가'을 질문을 던지며 분류한다는 뜻이다.

서양 중세 음악 그 중에서도 세속 음악을 공부하고자 한다. 기록된 서양 중세 음악 대다수는 종교 음악이며, 이 종교 음악이 어떻게 변천했나 계보를 추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관된 서양 클래식 음악 양식 사조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세속 음악은 비교적 그런 양식적인 변천 과정이 추적되기 힘든 편인데도 불구하고 미약하게 나마 서양음악사 서술 속에 일관된 흐름이 읽혀 흥미로웠다.

서양음악사 서술방식을 크게 음악사 기술에 있어 지역의 강조, 음악성과 그 고도화라는 측면에서 살피고 중세 세속 음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II. 서양음악사 서술의 특징

1. 음악과 지역

각 나라마다 자국의 작곡가와 그에 의해 작곡된 작품이 서양 음악사 발전의 최전선에 있던 시기가 있다.

예컨데 고전 시대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독일어권 음악, 바로크시대의 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와 같은 식이다.

즉 변화하는 시대마다 그 시기를 주도하는 하나의 나라가 있는 식이다.

하지만 모든 시대가 꼭 그런 건 아니며 같은 시대 서로 다른 지역의 음악이 각자의 고유한 특색을 보이며 경합하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은 독일어권의 후기낭만주의 음악이, 프랑스의 인상주의, 동유럽은 민족주의 음악이 대두되며 서로 경쟁하였다.

이렇듯 서양음악사에는 각 시대별로 음악 발전의 최전선에 있는 지역을 중심지로 바라보되 일부 시대엔 별도의 중심지 없이 여러 지역이 경합하기도 한다.​​

2. 음악성

노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가사에 주목해서 그것이 곡조가 붙은 '말'이라고 본다. 혹자는 음악 측면에 주목해서 가사 있는 '음악'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같은 노래를 두고 가사를 중심으로도, 음악을 중심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학자가 하나의 작품은 음악으로서의 성질이 강조됐다고 음악적 요소를 분석할 수 있고, 어떤 작품은 가사 전달의 기능이 더 강조된 작품이라고 하며 가사 내용을 중심으로 분석할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사 내용을 중심으로 분류한 음악은 음악으로서의 성질이 비교적 약한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음악 형식을 중심으로 분류한 음악은 비교적 음악성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음악의 고도화

3-1 시간 분절 방식의 발전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음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음악에 있어서 시간을 분절하는 매개변수인 리듬, 박자, 박 등을 등을 중요한 음악적 요소로 생각한다.

3-2. 성부확장

그렇다면 음악, 그중에서도 서구 클래식 음악은 무엇을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가? 서양 음악이 여타 문화권의 음악과 구별되는 핵심적인 요소는 동시에 2개 이상 울리는 음의 음향이다. 이는 동시에 울리는 2개의 음인 음정, 3개 이상의 음인 화음을 서구 음악이론에서 중요한 단위로 다루는 이유다. 대위법, 화성법 등은 일련의 일반화된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규칙으로서 서양음악 교육에서 이를 매우 강조하며 음악사 서술에 있어서도 음과 음 사이의 관계와 진행을 주목한다.​​

III. 중세 세속음악에 대하여

1. 1400년 이전

(1). 9세기 ~12세기

9세기 세속 음악은 로마 문화 영향 하에서 이해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라틴어 가사를 지닌다. 이 시기 음악은 악보로 보존이 되지 않았는지, 음악적 요소가 크게 발달하지 못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당대의 음악은 가사 내용을 중심으로 분류한다.

주로 역사적 사건, 사회 풍자를 다루며 12세기의 비판적 지식인 '골리아드'에 의해 정점에 이르렀다. 골리아드의 세속노래는 <카르미나 부라나>라는 책에 집대성됐다.

(2). 12세기 이후 200년

12세기 이후 200년 간은 특별한 음악적 중심지가 존재하지 않고 여러 지역에서 각자 고유한 음악이 전개됐다. 또 대다수의 음악이 음악으로서의 성질이 크게 발달하지는 않아서인지 가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남부 프랑스 지역의 트루바도르 음악은 사랑 노래가 중심을 이루며 이루어질 수 없는 공주와 기사의 사랑을 다룬 칸조, 시골 여자와 기사 사이 사랑을 다룬 파스트렐라, 이별 전야 사랑에 보초를 서며 노래한 알바 등이 있다. 이후 북부 프랑스의 투르베르는 칸조, 파스토렐라 등을 계승한 사랑 노래와 덧붙여서 이야기 노래도 활성화되었다.

독일 지역의 민네징어에 의해서는 독일화된 칸조인 민네리트가 나타났는데 음악적으론 aab 바르 형식을 갖추게 되었고, 이태리에서는 무용 반주 세속 음악 장르 발라타가 제시됐다.

2. 1400년 이후

(1). 14세기 초반 아르스 노바

14세기 초반은 프랑스가 음악적 중심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는 새로운 음악 아르스 노바 사조가 큰 공연을 했고 대표적인 작곡가는 기욤 드 마쇼를 들 수 있다.

기욤 드 마쇼에 이르면 이제 세속 음악을 가사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비교적 음악으로서의 성질이 강화된 음악이 탄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형식은 음악의 형식과 시의 형식을 모두 가리킬 수 있기에 마쇼의 정형시 형식을 분류하는 데 음악만 반복이 되느냐, 혹은 음악과 가사가 동시에 반복되느냐를 구분하려 알파벳의 소문자, 대문자를 구별해 표기한다.

(비를레: AbbaA 롱도: ABaAabAB 발라드: aabc)

또 아르스 노바의 세속 음악은 기존의 중세 세속 음악이 단 하나의 성부를 가지는 단성 음악인 것과 대조되어 여러 성부를 갖춘 다성 음악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부와 다른 성부 사이의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는 규칙이 강조됐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무지카 픽타와 이중 이끈음 종지인데 불협화 음정인 증음정을 피하기 위해서 악보에는 표기되지 않은 플렛을 붙이는 것을 의미하고, 이중 이끈음 종지는 3성부를 가정할 때, 최저음과 최상음 단6도를 장6도로 바꾸는 과정에서 최저음과 단3도를 이루는 중간음이 최상음과 증4도를 가지는 것을 피하려 최저음과 중간음 사이의 관계 장3도로 바꾸며 이를 완전8도로 종결했을 때 나타나는 종지이다. 즉 이끈음이 중간성부, 최상성부 두 군데에서 나타난다.

(2). 14세기 후반

14세기 말 프랑스 세속 음악은 앞선 시대의 아르스노바 양식이 점점 심화되었고 음악적 요소 역시 확대되었다. 즉 시간을 분절하는 요소를 중심으로 리듬에 있어서는 당김음이 연속적으로 쓰였고, 박자에 있어서는 빈번한 변박이 일어났으며, 여러 성부 사이에서 서로 다른 대조되는 박자를 사용하면서 그 음악적 요소를 발전시켰다.

(3). 14세기 이태리 트레첸토

한편 같은 시기 '중심지' 만큼은 아니지만 음악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역으로 이태리를 꼽을 수 있다. 이는 13세기 이태리 음악이 종교음악에 있어서는 혁신적인 음악이 나타나진 않아서 같은 시기 프랑스 만큼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 받지 아니하는 듯 하며, 그나마 세속음악에 있어 혁신성이 두드러지지만 프랑스 만큼의 '음악성'이 강하진 않다.

그래도 14세기 이태리의 세속음악의 혁신적인 음악성을 얘기해보자면 여러 성부가 동시에 나타나는 다성 음악이 나타났으며, 일부 장르에 한해서는 정형적인 형식이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발라타의 경우 프랑스의 비를레와 일치하는 AbbaA의 정형시 형식을 갖춘다.

하지만 그 외의 14세기 마드리갈, 카치아에선 물론 어느정도의 형식이 드러나긴 하지만 이는 정형화하기 힘든 느슨한 형식이며 각각 2-3개 3행절과 리토르넬로 반복구, 카논과 리토르넬로으로 프랑스 정형시에 비해선 짜임새가 약해 비교적 음악성이 적다.

그래서인지 이태리 14세기 세속음악(이하 이태리 트레첸토) 장르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서 분류하는 듯하며 14세기 마드리갈, 카치아, 발라타가 각각 자연과 사랑, 사냥장면의 대화체, 궁정의 사랑으로 대응된다.

특별히 이태리 트레첸토의 경우 다성 음악에 있어 가사가 붙은 성부가 일정하지 않은데 14세기 마드리갈의 경우 2성부 전체에 붙으며, 카치아는 최상성부에만 있어 나머지 성부는 악기반주로 추정하며, 발라타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발라타를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면 이태리 트레첸토의 대표적 작곡가 란디니의 경우 세속음악 150곡 가운데 140여곡이 발라타인데 이 가운데 67% 정도에 해당하는 곡이 2성부이며 모든 성부에 가사가 있고 33%의 3성부 발라타엔 일부분만 최상성부에 가사가 붙었다.

(4). 아르스 노바와 트레첸토의 관계

14세기는 아르스 노바에 의해 프랑스가 음악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시기이다. 같은 시기 이태리는 물론 중심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독자적인 세속음악을 제시히며 음악적 영향력을 돋보였는데 작곡가 란디니에 이르러선 프랑스의 영향을 받고, 이후 15세기엔 프랑스 음악도 이태리의 영향을 받으며 선율성이 강조된다. 그 뒤론 점차 이태리와 프랑스의 음악적 특징이 결합된 통합적 양식이 대두되고 마침내 르네상스에 이르러선 영국의 영향 하에 전 유럽에 새로운 음악 양식이 제시된다.

이렇듯 음악의 중심지라고 해서 항상 일방적으로 다른 지역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음악은 서로 영향을 받으며 변화함을 알 수 있다.

IV. 맺으며: 중세 세속 음악 파트에서 드러나는 서양음악사 서술의 방식

우리는 서양음악사 서술에 있어서 드러나는 특징을 지역, 음악성, 음악의 고도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음악사에 있어 지역에 관한 서술은 종종 중심지 개념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중세 세속음악에 있어선 14세기 음악의 중심지 '프랑스'로 나타난다.

음악성에 관한 서술은 12세기 지방 세속음악과 아르스 노바 정형시의 대조적인 분류 방식으로 드러난다.

음악의 고도화 측면에선 성부의 확장으론 단성 세속음악이 14세기 들어 다성으로 변모한 점, 시간 분절단위의 발전으론 14세기 후반 프랑스 세속음악의 당김음, 잦은 변박, 대조되는 박자 동시 사용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종교 음악에서 만큼 강한 계승의 측면은 아니지만 세속 음악에서도 어느 정도 음악성 발전이라는 일관된 흐름이 발견됨과 동시에 지역별 중심지와 경합이라는 전형적인 서양음악사 서술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허영한. 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 서울: 심설당, 2009.

김진아.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서술하는가? 서양음악사 서술의 구성성에 관하여 : 18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서양음악학 22.2 (2019): 95-120.

최나영(Choi Na-Young). "경험으로서의 음악사." 한국예술연구 -.3 (2011): 35-57.

새들배 서양음악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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