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말투가 매력적이던 그녀
魅力的 世界觀, 語調 少女
A girl with a fascinating worldview, linguistic style
1. 문예창작을 공부하던 그 아이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문예 창작을 전공하던 아이와 너무 재밌게 논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걔랑 뭐 하고 놀았지, 그 아이의 어떤 면이 그 때를 아직도 잊혀지지 않게 만드는 거지?' 싶다.
우선 그 아이는 말투가 독특했다. 항상 단정적인 어투를 썼다. "그건 아니야" "A는 B야" "C라면 D해야지"라는 식이다. 나는 딱 잘라서 얘기하는 거 잘 못하는데 그걸 잘하더라고.
또 자기 인생 이야기를 푸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역 사회에서 말도 안되는 부조리를 겪으며 고생하고 도망치듯이 집을 떠나서 서울 정착했다는데 듣는 내가 화가 나고 슬플 정도니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둘은 함께 한숨 쉬고 억울해 하고 분노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한을 조금이나마 푼 셈이다.
2. 공연예술가이자 심리 상담가
5년이 지난 지금, 내가 왜 그 당시 그 친구에게 매료되었고, 그때 만나서 논 경험을 잊지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가 무속적인 어법을 사용해서 거기에 난 홀린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녀가 종교적이고 영적인 기운으로 날 혹하게 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무속인을 종교인이라기 보다 일종의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심리 상담가 내지 굿이라는 종합예술 공연극을 하는 행위예술가로 바라본다. 그녀와 노는 과정에서 무속인의 심리상담가, 극 예술인적 측면이 보였다는 것이다.
우선 그녀의 단정적인 어법은 당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무당의 말투와 비슷하다. "넌 어딜 귀신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냐" "넌 어깨가 아파서 왔구나"라는 식이다. 처음부터 기선을 제압해 내담자의 마음을 제대로 꿰뚫어 보겠다는 의도인데 꽤나 효과적인 전략이며 예술가로서도 공연을 할 때 관객을 저런 식으로 휘어잡아야 한다.
또 굿도 그 종류가 여럿 있지만 대개 일정한 의식 절차를 거치며 억울하게 죽은 혼이 빙의되며 이들을 달래는 행위임을 생각하면 각본처럼 유년, 청소년, 성인기에 겪은 부조리의 역사를 들으며 감정이입해 원을 달랬던 것과 유사한 것 같다.
https://youtu.be/YCf28pp1_XY?si=T6W6TyLMUqE65h1e
3. 한국인의 심층엔 무가 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와 놀았던 경험이 무속적 체험과 유사하다고 해서 그녀에 매료된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무속적인 요소가 수용자에게 재미와 몰입감을 준다고 해도 거기에 설득 당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텐데? 독실한 개신교도라던가 세상을 논리와 이성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냉혈한이라면 말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매료된 이유에 대해선 추가적인 얘기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엔 무속에 대한 동양철학자 임건순의 관점을 얘기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임건순은 한국인의 심층에 무속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무속(巫俗)을 미신으로 치부하면서도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면 교회, 절을 찾아가다가도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당집을 찾아간다. 또 겉으론 내색하지만 운세, 점, 풍수지리, 굿을 은밀하게 좋아하는 걸 보면 설득력 있는 얘기다. 또 한국 사회의 여러 현상과 이면에 무속을 대입해보면 명쾌하게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속은 종교적, 영적 측면이라기 보단 '억울함'과 그것의 '해소'의 세계관, 굿의 종합극 행위 예술적 면모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4. 한국 사회에 미친 무의 양면성
그는 무속이 정치와 연관될 때는 원과 해소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518,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피해자의 원과 한을 푸는 데에 집중하는 나머지 책임을 희생양으로 지목된 한 사람에게 몰아 처벌하고, 사고에 대한 기억과 치유만을 강조하는 것을 얘기한다. 이는 이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줄이는 안전 장치 개발 등의 실질적인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반면 문화 및 공연과 연관 될 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로 일컫는 '신파'는 외국인 관객 입장에선 감정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문화 콘텐츠이고, 동시대의 케이팝이 갖는 종합예술적 면모 -즉 가수에게 노래만 잘 부르는 걸 넘어서 춤도 잘 추고, 외모도 갖추고, 예절도 있고, 팬들과 성실히 소통하길 바라는 한국인-를 생각하면 전자는 한을 가진 망자를 위로하는 '무속'의 정신과 후자는 '음악' '춤' '노래' '서사풀이'를 모두 연행하는 굿과 동질적이라고 한다.
https://youtu.be/xpQtvxs4jx0?si=9TA33l3TT8vYXJBM
5. 나가며: 5년 전 논 경험이 잊혀지지 읺은 진짜 이유
이처럼 한국인은 심층에 무속에 관한 감수성이 있는데 문예창작을 하던 그 아이는 일종의 '무당'의 면모를 보였기에 내 심층의 샤머니즘적 무의식을 자극해 매료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종교적인 측면을 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그 아이는 언어를 가지고 쥐락펴락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이자 공연 예술가였고 내 마음을 궤뚫은 심리상담가였다. (물론 그녀는 제도권 문예 창작 전공자라는 면에서 무속적 면모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작가,예술가이다) 그것이 내가 5년 전 그 아이와 논 경험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이유다.
덧붙이며: 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사주 팔자는 고대에 만들어진 만큼 그 점사의 해석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제와 안 맞는 면이 있어 오늘날의 현실, 상황에 맞춰 해석을 달리리 한다고 한다. 전형적인 예가 '무당' 팔자를 '연예인', '예술가'로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인데 '굿'을 일종의 극예술, 행위예술로 보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하다고 본다.
나는 예술인 및 공연으로서 무당, 굿을 참고해 호소력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음악 전공자 관점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굿이 갖는 서사 구조에 따라서 뮤직 비디오를 만들고, 무당이 갖는 '단정적 어조'의 운율, 발음적 면에서 탐구해 예술음악적으로 발전시키길 기대한다.
(참고로 오늘날 비디오 아티스트로 유명한 백남준은 젊은 시절 전위 예술인이자 행위예술가였는데 자신의 행위음악, 행위미술의 원형이 굿이라고 고백한 바있다.)
https://seulsong.tistory.com/m/198
참고문헌
김희선. 문화의 시각으로 음악을 보다. 서울: 띠움, 2020.
박정진. 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경기도: 한국학술정보, 2010.
오희숙. 음악 속의 철학. 서울: 심설당, 2009.
이용식. 음악인류학.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홍승희. 신령님이 보고 계셔. 서울: 위즈덤하우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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