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랑 술 게임할래?: 술 게임의 음악성
-민속음악으로서의 술게임
酒類遊戲
1. 술 게임도 음악인가?: 민속음악에 관하여
술게임은 음악인가? 과거의 서양 클래식 음악 일변도로 깊이 빠진 나라면 절대 안된다고 했을 것이다. 음악은 모름지기 작곡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요, 그 작품은 전용 공연장의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감상하는 것이라고 보아서다. 베토벤 교향곡, 모차르트 소나타와 같은 것이나 아니면 다소 양보해서 뮤지컬 캣츠나 뉴진스 하입보이 등이 음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국악 민속음악 속 온갖 모 심는 소리, 논 메는 소리, 도리깨질 소리의 농요를 보면서 음악은 일종의 인류학적 행위로 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구태여 작곡가의 작품에 한정지어 음악을 바라보기 보단 한 사회 내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동체 내에서 의미를 공유하는 소리 구조로 넓게 봐도 되겠다 싶었다.
집단 노동을 하면서 서로의 발을 맞추기 위한 노동요, 여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부르는 농악, 누군가를 짖궂게 놀리려고 부르는 놀림유희요까지 이 모든 것이 음악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렇듯 단순히 미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심오한 감상과 분석의 대상이 되는 음악 작품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음조와 이를 이용해 의미를 재확인하는 사회적 행위도 음악이다.
2. 민속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당대 생활상 투명하게 드러나서
나는 민속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당대 민중의 생활상이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러 명이 동시에 부르는 <논 메는 소리>와 <김 메는 소리> 그리고 <고사소리>와 <지신 밟는 소리>를 보면서 농민들이 집단 협동 노동을 하였고 또 농작의 풍요를 기원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또 도구 유희요 <고무줄 놀이하며 부르는 노래>를 보며 '당대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사시랭이><곱새치기>라는 노름 노래를 보며 '당대에도 도박 중독자 꽤나 있겠군' 싶으며 <숫자 풀이><지명풀이><천자풀이>를 보면서 '지적인 쾌락을 자극하는 유희만큼이나 짜릿한 놀이는 또 없지' 싶다.
3. 오늘날의 민속음악으로 적절한 것?
(1) 도시
그렇다면 오늘날을 대표하는 민속음악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시 말해 동시대의 사람들의 생활상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음악 행위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통념의 '주로 농촌의 민중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노래'로는 2022년 통계 기준 도시지역에 거주 인구 비율이 91.9%인 오늘날의 민속음악을 설명하기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동시대의 '민'은 '도시 거주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도시 내에서의 생활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속음악의 대표적인 두 예시로 노동요와 유희요를 들 수 있는데 동시대의 한국 도시에 어떤 노동요와 유희요가 있는지 살피겠다.
(2) 도시 노동요?
하지만 도시는 '공동체적인 지역사회'와 대비되는 익명의 개개인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민중들이 생활 속에서 모여 만드는 음악'이란 참 발견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시민은 대부분 사무실에서 데스크탑의 워드나 엑셀을 켜고 자기 할 일을 하거나, 스타벅스에서 노트북 속 프롬프드 창을 냉철하게 키며 혼자 일하거나 자기개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쿠팡 물류센터 상하차는 그나마 균질적인 리듬을 공유하는 집단 노동이다. 그렇기에 그 곳에선 '생활 속에서 자연발생하여 민중이 다 같이 스스로 부르며 공유하는 기능적인 음악'으로서 노동요가 발생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쿠팡 상하차에서 일하는 사람도 실은 단기 알바 차원에서 오는 지라 대개 서로 모르는 사이이기에 일의 능률을 올리고자 다 같이 동일한 노래를 부르며 몸을 움직이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리하자면 도시 노동은 사무직의 경우 집단적인 리듬을 공유하며 이뤄지기 보다는 개개인 단위로 작업을 하고, 육체노동에선 일부 집단적인 리듬을 공유하는 사례를 볼 수 있나 대부분 서로 안면이 없는 사이이기에 노동요를 공유하며 연행하는 사례를 보기 힘들다.
(3) 도시 유희요
난 도시민의 민속음악을 '노동요'보다는 '유희요'에서 찾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 한국은 꽤 자기개발, 성장의 사회적 압박이 강한 만큼 노동과 학업 강도가 세며 반대 급부로 보상 차원의 친목, 휴식차 동호회, 유흥문화 등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괜히 이 나라가 전통적인 음주가무의 강국이요 풍자와 해학의 본 고장 아니겠는가?
4. 술게임의 음악적 가치
결국 상기의 이유로 '술 게임'이 '도시민의 유희요'로서 오늘날의 민중 생활 상을 잘 표상하는 가치 있는 민속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인류학적 가치와 미적 가치로 나눠 이야기해보겠다.
(1) 인류학적 가치
술게임은 주로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의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선배로부터 후배에게 전해지는 음악이다. 이는 여흥, 단결,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대학 신입생의 술 자리가 벌어지는 환영식은 일종의 '성인식' 역할도 있는 만큼 '통과의례적 유희요'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2) 미적 가치
더불어서 '술 게임'은 미적 가치도 있다고 보는데 단순한 여흥을 넘어 이면의 복잡한 형식적 요소 예컨데 당김음 리듬, 인토네이션 등이 있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과 같은 2박자 계열의 단순한 장단단 격의 리듬을 가지는 게임에서 부터 '퐁당퐁당' '출석부' '마셔라 마셔라'와 같은 타이로 이어진 싱코페이션, '딸기가 좋아'와 같은 단장격의 두드러지는 뒷 부점은 매우 리드미컬하다.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더 게임 모모데쓰"할 때 몰아붙이듯이 빨라지는 템포 역시 극적이다.
5. 결론: 술 게임
이렇듯 술 게임은 훌륭한 인류학적, 미적 가치를 지닌 동시대의 민속음악이다. 앞으로도 음악학도로서 연구하고 탐구할 가치가 있다.
6. 덧붙이며: 음악과 술의 관계에 대한 학문적 얘기
술과 음악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게 여겨졌고 이는 음악사, 미학, 음악인류학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1) 음악사
흔히 말하는 사자성어 '음주가무'는 술이 취한 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우리나라 '삼한'의 생활 상을 기록한 일종의 민족지인 '삼국지 동이전'에 등장한 말이다. 삼한에 관한 기록을 보면, ‘늘 음력 5월 파종하기를 끝내고 나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무리로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는데 밤낮으로 쉬지 않는다. 음력 10월 농사일을 마치면 또 이렇게 한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 조상들의 술, 노래, 춤을 즐긴 모습을 보면 동시대 사회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노래방에서 주취한 채 가무를 즐기는 현대인, 대학가 술집 속 신입생 환영회에서 기분 좋게 부르는 술 게임, 심야 유흥가에서 휘청거리며 알콜 섞인 토를 뱉고 고성방가를 지르는 일부 사람을 보면 과연 삼한인의 후손답다.
(2) 미학
술과 음악 사이의 밀접한 연관을 통찰한 바는 서양에도 존재했다. 철학자 니체에 따르면 한편엔 합리적이고 질서, 조화, 균형의 아폴론적 예술, 다른 한편엔 광기와 도취의 디오니소스적 예술이 있다고 한다. 이때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인 만큼 니체 또한 주취와 음악의 연관을 통찰한 셈이다.
(3) 음악인류학
국악학자 이용식은 음악인류학자는 술에 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악인류학자에게 있어 물론 선행연구를 검토하고자 여러 문헌을 읽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발 벗고 나서서 현지 사람과 이야기하고 노래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한국에서의 현지조사는 대개 시골의 노인을 상대로 민요를 채집하는 것이 많은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맨 정신엔 노래를 부르기 부끄러워 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외부에서 온 낯선 사람이라 창피하기도 하고 으레 노래는 술 마시면 자연스럽게 흥이 돋아야 나오는 거라 믿는 분도 많가 때문이다.
결국 음악인류학자는 현지 조사 대상자와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음악 연행을 유도하기 위해서 술의 힘을 적극적으로 빌리곤 한다.
(4) 음주와 음악의 관계 정리
이렇듯 술과 음악은 여러 측면에서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만큼 경우에 따라선 음악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음주와 어느정도 친해질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7. 사족: 이 얘기하고 싶어서 술 게임의 음악성에 관해 논하며 빌드업했다. -개인사
나는 왜 이리도 술 게임을 탐구하고 싶은가? 노스탤지어와 결핍이 있어서다. 2019년 새내기 시절 나는 학교에서 겉돌았다. 친교-술자리-술게임-친교로 이어지는 인싸 싸이클에 편승하지 못한 채 캠퍼스 라이프 첫 해를 보냈는데 다음 학기엔 사교성 있는 사람이 되야지 다짐했을 땐 중국발 전염병이 도져버렸다.
사실 역병이 돌아도 할 거 다 하는 애들 많을텐데 핑계일지도 모른다. 나도 2020년 코로나 시국의 한 가운데에서 술 자리를 가진 적 있긴 한데 하이볼 한 두 모금 마시고 그대로 벽에 기대 잠들었다. 일어나서 집 가는데 몸이 뇌가 명령하는 대로 빠릿빠릿 움직여지지 않고 지 멋대로 흐느적거리는 데 영 찝찝해 다신 술을 안 마셨다.
그런 내가 원하는 게 친교인지, 기분 좋은 취기인지, 술 게임인지 정확히 하나만 찝어서 얘기하긴 어렵다. 난 셋 모두에 미숙한 동시에 모두를 갈망하는데 셋은 어슴푸레 섞여있다. 친해지면 술 마시고, 같이 술 마시면서 친해지고 그러면서 술 게임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친교와 취기를 촉진하는 거겠지.
누군가랑 진심으로 친해져 보고 싶다. 서로에게 극단적으로 솔직해보며 마음과 의미를 공유하고 싶다. 취기에 올라서 서로 창피하게 망가져보는 그 경험 나도 해보고 싶네. 너와 내가 취한 상태로 추는 춤과 부르는 노래는 어떤 음악인가? 궁금하다. 보통 20살에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걸 새삼 26살인 지금 호기심 생긴다.
술자리 인싸 되고 싶다. 앞서 얘기 했듯이 술자리 인싸가 되는 것에 능하면 전공에도 -현지 조사나 인터뷰, 연구-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며 나중에 혹시 직장에 들어가거나 사업에 참여해 영업, 네트워킹할 때도 긍정적인 기여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난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며 붙임성 있게 대화하는 기질 가져보고 싶은데 아웃사이더 및 속칭 '알쓰'로서 쉽지 않은 것 같다. 술 마시는 연습 좀 해볼까?
나는 친교-음주-술게임-친교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다시 복원할 것이다. 어떻게? 술게임을 잘 배우고 익힐 것이다. 나중에 혹시 술 게임은 하게 될지도 모르니, 겸사겸사 전공 연습하는 셈 치고 악보로 받아적으면서 외우고 익혀나 봐야겠다.
이후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말해봐야지 '나랑 술게임할래?'라고.
참고문헌
김영운. 국악개론. 경기도: 음악세계, 2015.
김희선. 문화의 시각으로 음악을 보다. 서울: 띠움, 2020.
이용식. 음악인류학.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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