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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신변잡기

[자유 3] 뉴진스 하니와 구 일본제국 대동아 공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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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대동아 공영권 그리고 K-POP 멤버 뉴진스 하니>

https://youtu.be/Rj7N4ThLGQY?si=eEQHDAX4SQDdzkW1

 

 

 

몇달 전 화제의 공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뉴진스의 도쿄돔 공연이었다. 특히 한국 언론이 주목한 것은 멤버 하니가 부르는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 커버였다.

베트남계 호주인 한국 아이돌이 일본에서 공연을 한 것을 두고 케이팝의 국제성, 다른 한편 1980년대라는 일본의 전성기를 오늘날의 시갹으로 재해석했다는 시대적 관점을 주목했다.

그렇다. K팝은 단어 그대로처럼 단순히 '한국'만의 음악이 아니다. 하니의 사례에서 알 수 있 듯 전 세계 여러 나라들과 얽혀 있는 음악이다. ​

'베트남, 호주, 한국, 일본'

난 이 4개 나라를 보면서 불현듯 든 엉뚱한 생각은 '대동아 공영권'이었다. 저 4개국 모두 소위 '대동아 공영권'의 범위 안에 들어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

뉴진스 하니 삶의 궤적과 구 일본제국 대동아 공영권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이 내세운 구호인 대동아 공영권은 다분히 영국, 불란서의 블록을 의식한 개념인데, 영불이 본국과 식민지 안에서만 물자가 돌도록 패쇄적인 권역을 만들었듯 일본 역시 닫힌 권역으로서 제시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를 넘어서 문화적인 의미부여도 했는데 만주국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오족협화 왕도낙토 (五族協和 王道樂土)' 즉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화합하여 평화로운 땅을 이룩하자는 담론을 제시했다.

만주국을 기준으로 보아 몽골, 조선, 일본, 한족, 만주족 5족이지, 대동아 공영권 전체로 확장하면 동남아, 태평양 제도민들도 자유롭게 일본, 조선, 만주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꿈을 펼치고 문화적인 이상향을 꿈꾸는 그림을 그렸던 셈이다. ​​

만주국 선전 포스터 출처: Chapman University Digital Commons

물론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어서 실제를 알 순 없으나 문헌에 의하면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보충하느라고 다 같이 힘든 전시 상태였다고 한다. 또 일본 제국 사람은 동남아 태평양 지역민에게는 점령군으로 비췄기에 이상적인 '오족협화 왕도낙토'와 같은 모습은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2024년 6월의 오늘. 일본 제국은 패망하였고 식민지 조선은 독립되었다. 미국에 의해 모든 제국의 블록은 해체되었고 거의 모든 나라는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수출 중심 경제를 채택했던 한국은 급격히 성장해 산업을 육성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엔터테인먼트, 게임 등 문화산업 및 IT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다. ​​

"사이버 펑키한 첨단 기술이 일상화된 서울, 눈부시게 휘황찬란하며 스펙터클하게 구현되는 디지털 비디오, 그 속에서 절도 있게 군무를 추며 노래 부르는 잘생기고, 예쁜 가수들.'

전통적인 선진국이 아니라서 '급속 추격 성장'하던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편견 없이 재빠르게 수용하고 갖다 붙히곤 하는데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배끼기도 하고, 라디오를 통해서 익힌 일본 음악을 빌려오는 한편, 대중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맞춰 발빠르게 대응하고 과감하게 아이돌 가수를 기획하기 시작하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케이팝은 호주에 살던 평범한 비엣남계 소녀 팜하니에게도 매혹적이었나 보다. 그녀는 과감하게 '플러스 글로벌 오디션'에 지원해 합격해 트레이닝 과정을 겪으며 한국 아이돌로 데뷔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경쟁 그룹의 견제, 갈등도 있었지만 일본 수도의 심장부인 동경돔에서 다수에게 회자될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4세대 케이팝 여자 아이돌의 상징적인 인사로 우뚝 섰다. ​​

'월호한일'

나는 하니를 보며 구 태평양 전쟁 시절 일본 제국인이 보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자신들이 식민지 삼거나 삼을 뻔했던 지역 출신 소녀가 성장하여 자국의 심장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할까?

'오족협화' '대동아공영권'은 그저 프로파간다 구호였을 뿐인데 이상적인 모습이 실제로 드러나서 뻘줌하고 당황스러울까?

아니면 '자국이 전쟁에서 승리했더라면 팜하니는 4개국이 아닌 일본 제국 국내의 4개 지역을 이사가며 활동한 아티스트였을텐데...'하는 회한을 가졌을래나?

일본 제국이 총칼로 묶어두던 '월호조일'의 대동아공영권을 자유주의 미국이 해체하고 개방한 후, 구 일본 제국 식민지였던 한국의 문화산업이 옛 대동아 공영권 지역의 소녀를 매혹시켰다.

이후 그녀의 '월호한일'을 넘나들며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게 하는 모습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

일본이 관 주도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해방 후 한국도 압축 성장에 실패했다면, 미국이 무역개방체제를 만들지 않으며 케이팝에 영감을 주던 대중음악을 생산하지 않았다면?

남베트남 군이 사이공을 방어하면서 시간을 못 끌어서 하니네 부모님이 탈출하는 데 실패했다면, 호주가 북베트남을 피해 도망쳐온 보트피필을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뉴진스 하니를 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20세기 세계사 교과서 속 '월호조일' 4국 사이의 첨예한 갈등, 경쟁, 협력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보면서 진지하고 심각해져갔다.

그러다가도 '월호한일'의 나라를 넘나들며 천연덕스럽게 노래 부르는 하니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며 차라리 '팜 하니'야말로 세계사 그 자체이지 싶으며 기분이 좋아진다.

https://youtu.be/ljnOOcicsoo?si=kJieE-4XOF5tlS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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