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베트남 귀빈 환영행사의 추억
어느 날이었다. 베트남에서 오신 귀빈이 부대 방문 하시기로 했다. 우리 군악대는 귀빈을 환영하는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군악대장님께서는 종종 참신한 시도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셨다.
마침 당시에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쇼츠 등 SNS에서 베트남 대중가요 '씨뗌'의 중독성 있는 '띵띵땅땅' 커버 챌린지가 유행했다.
군악대장님께서는 이번 귀빈이 행사에 '씨뗌'을 군악대가 연주하기 좋게 브라스 버전으로 편곡해 이를 환영 행사에서 연주하기로 하셨다. 이에 긍정, 부정 입장이 갈렸다.
II. 씨뗌 선곡에 관한 대립되는 두 입장과 이론적 근거
1-1. 긍정적 입장: 베트남의 지역성 강조를 통한 환영의 뜻 전달
내국인 입장에서 자국에 오래 있으면 자기 나라에서의 생활 양식이 너무나 차고 넘치며 공기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 의미를 잘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면 다르다. 외국의 낯선 생활 양식, 배경을 접하면서 자국에서 자연스럽고 아무렇지도 않게 차고 넘치게 접했던 것이 갖는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에 있는 와중에 자국의 음식, 영화, 언어, 음악을 접하면 반갑고 강하게 인상 깊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 방문한 베트남 귀빈이 자국의 음악으로 환영하는 군악대 의전을 받으면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1-2. 이론적 근거: 음악의 지역성
음악은 시간 예술이지만 동시에 공간적 의미도 형성한다. 통상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이 특정한 지역적 의미를 가진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데 수용자, 연주자, 작곡가의 국적을 기준으로 아리랑을 한국의 음악, 레게를 자메이카의 음악으로 여기고 헨델의 작품을 독일의 음악, 드보르작의 교향곡을 체코의 음악으로 여긴다.
하지만 독일에서 영국으로 귀화한 헨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헨델의 음악은 독일음악인 동시에 영국의 음악으로도 여겨지고,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은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작곡된 음악인 만큼 미국의 음악으로도 여겨진다.
이렇듯 음악을 음악가의 국적을 기준으로 1대 1 대응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유동적이고, 중첩된 지역성을 가지기도 한다.
한편 오늘날과 같이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나 전 세계 곳곳의 음악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음악의 지역성을 희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음악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특정한 음악에 그 음악이 생산된, 배경으로 삼는 지역 및 작곡가와 연주자의 국적을 기준으로 음악과 지역 사이의 대응을 하고, 결국 음악이 지역성이란 의미를 획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1. 부정적 입장: 의전음악으로는 부적절한 장르인 대중 음악
씨뗌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경위는 숏폼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 숏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의 일명 '띵띵땅땅 챌린지'를 통해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콘텐츠는 지나치게 바이럴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있고, 그 정도가 지나쳐서 마치 스팸 메일과 같이 과도하게 홍보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콘텐츠를 노출시킨다는 비판과 그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씨뗌은 사랑과 관련한 아름다운 가사와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다.
다만 씨뗌이 대중에게 퍼진 경로는 띵띵땅땅이라는 중독성 있는 후크를 중심으로 따로 떼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율동과 함께 결합한 콘텐츠를 통해서 전파된 만큼, 이 음악은 진지한 감상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소위 하나의 밈으로서 전파되는 만큼 의전 음악으로 쓰일 정도의 품위를 갖췄다고 보기 힘들다.
2-2. 이론적 근거: 대중음악의 미학적 가치평가와 사회적 인식
씨뗌은 베트남 대중 가요이다. 앞서 음악의 지역성을 중심으로 베트남에 방점을 두어서 분석할 수도 있지만, 이 음악의 장르에 집중해서 대중 음악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대중 음악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기를 지향하는 상업적인 음악이다. 그리고 그 특성상 사람들이 쉽게 흥얼거릴 수 있도록 중독성 있는 후크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대중에게 다가고자 발생한 특성이 음악의 미적 가치를 충실하지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중독성 있게 전파될 수 있는데에 집중한 나머지 완성도가 부족한 음악이 탄생하기도 한다.
또 통념 상, 우리는 클래식 음악과 일부 재즈 음악에 대해서 고급스럽다는 사회적 인식을 가지는데 이는 해당 음악이 역사적으로 상류층 및 여유를 가진 계층 등이 향유하는 음악이며 고급 문화로서 발달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중 음악은 말 그대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향유하는 음악인 만큼 고급 음악보단 격식 없이 듣는 음악으로 인식되곤 한다.
결과적으로 귀한 손님을 모시는 자리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그에 걸맞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는 음악을 선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씨뗌과 같이 대중 음악 그중에서도 소위 인터넷 상 밈으로 소비되는 가요를 의전 음악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나올 만하다.
III. 나가며: 그래서 행사 후기는 무엇인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 군악대는 결국 베트남 귀빈 의전 행사에서 씨뗌을 연주하였다. 기대와 달리 행사가 끝나고 들려오는 후문에 따르면 소위 '높으신 분'들께서 이 선곡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씨뗌의 가벼움, 통속성을 근거로 이번 의전음악 선곡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셨나 보다.
한편 귀빈으로 오신 베트남 분께서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는 전달된 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씨뗌은 베트남 대중 가요로서 단순한 소리 구조를 넘어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상징으로 기능했다. 이때 의미란 여럿이 중첩됐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베트남이란 지역성, 또 다른 하나는 밈으로서 소비되는 대중가요 특성상 대중성, 통속성이다.
한편 이번 논의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베트남어 가사를 의미로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노래가 사랑을 주제로 한 만큼 애정의 의미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같은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음악적 의미는 단순히 화성, 리듬, 멜로디 등의 소리 요소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미디어, 지역, 계층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함을 알 수 있다.
IV. 덧붙이며: 음악과 언어 사이의 강한 연관성 그리고 의사소통
1. 음악을 통한 의사소통
음악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서양 음악의 오랜 역사 내내 제기된 질문이다. 음악 어법이라는 표현, 성악곡에서 가사가 중요한 요소인 점 등 언어와 음악의 밀접한 연관을 고려했을 때 언어로 의사소통하듯이 음악으로도 의사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던질 만하다.
하지만 언어와 같이 개념으로 대상을 명확하게 지시하기보다는 음악은 도대체 그것이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모호하고, 심지어 대상을 지시할 수나 있는 건지 의문이 달기에 음악을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은 든다.
물론 음악도 한 문화권 내에서 의미를 부여받고 상징으로 기능하는 만큼 의사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 한 사회 내에서 어떤 음악이 통용되는 공통적으로 합의된 의미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에서도 발화자의 의도와 다르게 수신자가 해석하는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듯이 음악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서 들려준 이야기는 군악대에서 겪은 음악의 커뮤니케이션, 미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생생한 일화이다.
2. 음악은 만국공통어인가?
누군가는 '음악은 만국 공통어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음악이 만국공통어적인 측면을 보일 때가 있다. 음악은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갖는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이기도 하고, 이는 서로 다른 언어권, 문화권, 인종을 뛰어넘어서 인간 대 인간 사이에 감정을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감정적 측면이 강하지 않은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한 문화권 내에서 합의되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가진 음악을 사용할 경우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세계화를 통해서 전 세계가 보편적 의미를 공유하는 단일한 문화권 처럼 되어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음악을 만국 공통어로 보는 시각도 이해가 될 만하다.
3. 음악은 만국공통어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단 사령부라는 소규모 집단 안에서도 하나의 음악에 대해서 어느 한쪽은 지역성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다른 한쪽은 장르적 특성을 중심으로 인식하는데 과연 같은 음악에 대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는 전제하에 제시되는' '음악 만국 공통어론이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추가적으로 씨뗌을 베트남어 화자는 가사를 중심으로 '애정'이라는 의미로 인식할 것이고, 또 음악 이론 및 분석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율 음악적으로 접근하여 '화성 리듬이 독특한 음악'으로 평가할 것을 고려해보면 음악이 인류의 만국공통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허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희선. 문화의 시각으로 음악을 보다. 서울: 띠움, 2020.
오희숙. 음악 속의 철학. 서울: 심설당, 2009.
홍정수. 음악미학. 서울: 音樂世界, 1999.
Harper-Scott, J. P. E. 음악학개론. 경기도: 음악세계, 2014.
학술논문
이해완. "대중매체의 발전과 대중예술 정의의 문제." 美學 35.- (2003): 319-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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