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음악이론을 복습하다.
10대 시절 내가 다녔던 예원학교 옆에는 신세계 백화점, 롯데백화점이 위치하며 우리 학교 학생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줬다. 물론 그 놀이터는 꽤나 고급스럽고 권위주의적이며 진입장벽이 느껴지는 장소여서 마음대로 자유롭게 헬렐레 팔렐레거리며 놀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장소가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 풍경들 -중국어와 일본어와 영어가 뒤섞이며 현란하게 관광도시 서울의 국제성을 증명하는 듯한 음성들-과 일제히 정렬된 온갖 고급 물품들 그리고 대리석으로 호화스럽게 장식되며 귀금속과 보석으로 영롱하게 빛나던 그 사치스러운 공간에서 꽤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받았다.
사람들은 이 말을 하면 이해하기 어려워하지만 나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음악 이론을 복습하게 된다. 도대체 그곳이 음악 회장도 아닌데 어떻게 음악을 복습할 수 있냐고 질문을 할 수 있으며 혹은 제2 롯데타워 안에 있는 롯데 콘서트를 얘기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내가 배우는 음악 이론에서의 음악은 단순히 멜로디 리듬 화성으로 이루어진 소리 구조물이 아니라 한 사회 문화적 요소가 반영된 텍스트이기 때문에 백화점이라는 작은 소우주 공간이 만드는 문화적 질서 속에서 문화 텍스트로서의 음악을 복습할 수 있었다.
무덥고 습한 오늘, 나는 집 안에 틀어박혀 임용고시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무작정 밖에 나가 걸어 현대 백화점에 갔다. 오늘도 학창 시절처럼 1층부터 5층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아이 쇼핑을 하였다. 백화점 안에서 마음이 가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장소가 하나 있는데 어린이 미술관이다. 백화점 안에 미술관이 있는 거 그것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며칠 전 무료 전시회 티켓이 생겨 간 미술관도 잠실 제2롯데타워 백화점 7층에 있는 롯데뮤지엄이었지."
백화점 안에 미술관에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두 장소가 하나의 건물 안에 있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어느 정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논쟁의 각 입장에 따라서 전제하는 예술관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겠다 싶다. 과연 백화점과 미술관은 동질적인 장소일까 이질적인 장소일까?
나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백화점이란 문화적 공간 속에서 문화적 텍스트로서의 음악을 사유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론 백화점과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이는 오늘날의 미술관과 백화점에 대응할 수 있는 '음악을 포함한 예술' 그리고 상업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 장르 별로 분류된 대한민국의 음악 학제를 고민하면서 백화점이란 문화적 공간 속에서 문화적 텍스트로서의 음악을 성찰했다.
II. 질문: 백화점과 미술관은 동질적인 공간인가 이질적인 공간인가?
몇 년 전 아는 누나가 나 보고 여자친구 생기면 여기저기 이쁜 곳에 데려 가서 놀러다니라고 얘기했다. 나는 '미술관이나 백화점 같은 곳 말씀이시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누나는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둘은 성격이 많이 달라'라고 얘기했다. 난 아쉽게도 그 이후 누나의 대답이 기억 안나나 추정컨데 미학적 근거를 들었을 것이다.
1. 백화점과 미술관을 이질적인 장소로 보는 입장 - 칸트적 미학을 근거로 바라보자
기본적으로 백화점은 물건을 팔기 위한 상업용, 미술관은 예술성을 추구하기 위한 공간이다. 예술성에 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있겠지만 칸트적 의미의 심미적 체험 대상으로서 예술 작품을 바라본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해보자.
칸트에 따르면 심미적 경험을 하려면 예술 작품을 바라볼 때 어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순수하게 심미적인 감상의 대상이어야 한다. 정말 아름다운 그림을 봤을 때 "이게 얼마짜리지? 이거 그림 그리는 사람은 어느 미대를 나왔을까? 이거 그림 그리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였을까?" 와 같은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그 그림을 이루고 있는 색 구도 배치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집중해야 심미적 체험이 가능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백화점은 상업성을 추구하며 상품으로 물건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물론 백화점에 입점한 여러 점포는 미술관의 여느 예술 작품처럼 반짝이고 아름다운 오브제를 진열해놓는다. 근데 겉으로 보기에 비슷하다고 둘의 본질까지 같다고 해선 안된다. 백화점 점포는 자기 물건을 사심 없이 바라보게끔 진열했다기 보다는 고객들에게 팔기 위해서 늘여 놓은 것이다. 고객들도 가격, 비용, 효능을 중심으로 물건을 본다. '이거 얼마짜리야? 이거 입고 다니면 이성에게 인기 좀 얻을 수 있겠지? 이거 차고 동창회가면 성공한 것처럼 보이겠지?'라는 식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백화점 상품이 갖고 있는 색, 구도 등을 상업적, 경제적 이해관계 없이 관조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멍하니 뚫어지게 상품을 쳐다보면 점원이 한숨을 쉬며 불친절하게 꼽 먹일 것이다. '이제 그만 가시라고.' (반대로 미술관에선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건 오히려 바람직한 관객의 심오한 관람 태도로 취급 받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백화점 점포와 미술관은 각각 겉보기에 아름다운 물건을 진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두 곳이 진열하는 물품의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능성을 조건으로 하는 예술품과 경제성, 상업성이란 기능성을 갖고 있는 상품은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본질적이고 불연속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각각의 물품을 진열하는 두 장소는 매우 이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백화점과 미술관을 동질적인 장소로 보는 입장
(1) 미학: 상업성, 예술성 혼재 넓은 의미의 시각예술적 요소
나는 예술품을 꼭 무목적적, 무기능적으로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을 보면서 가격, 비용, 이윤, 용도, 효용 배경을 생각하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가 홍대 미대 출신이고, 어느 대학의 교수이고 꽤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그림을 본다고 해서 내가 예술을 예술로 바라보지 않다고 얘기하기 힘들다. 또 적지 않은 미술관에 가보면 그 그림 한 켠에 숫자가 쓰인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미술품의 판매 가격이다. 이런 사례만 봐도 상업성을 근거로 순수 예술품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게 결코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추가적으로 백화점 점포에 파는 상품 역시 마치 순수 회화를 바라보듯이 그 형식적 구성에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다. 파텍 필립 시계에 박힌 여러 보석의 빛깔의 하모니는 얼마나 영롱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독일제 만년필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를 보면 그 매끈하게 빠진 닙을 보며 경탄한다.
정리하자면 백화점 점포에서 파는 제품과 미술관에 전시한 예술품은 넓은 의미에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시각 예술적 요소가 드러난 물품이라고 볼 수 있다.
(2) 예술 인류학: 데이트 또한 하나의 행위로 인정해야.
또 많은 남녀가 백화점과 미술관을 데이트 배경 공간으로 사용한다. 이때 데이트는 단순히 두 독립적인 개인으로써의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물건을 구경하는 행위가 아니다. 각자 개인이 주체로서 예술품을 바라보며 심미적 체험을 하다가도,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상업성을 가진 물건으로도 본다. 또 어떨 때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서로가 서로의 감상 주체이자 대상이 되곤 한다. 즉 데이트 역시 심미적 체험, 상업적 대상으로 바라보기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행위로 봐야한다.
이런 측면에서 백화점과 미술관에서의 데이트는 단순히 물건을 관람하기 위한 두 남녀 개인의 동행이라기 보다 아름다운 형식적 구성을 가진 물건이 두 남녀 간의 연애 행위를 촉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가운데서 이뤄진다고 봐야 한다.
(3) 건축: 외부와 분리된 폐쇄적 전용공간
이렇듯 백화점과 미술관은 심미적 체험, 상업적 행위, 연애가 번갈아가면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나는 백화점과 미술관이 그 대상이되는 물건으로서 상품이자 예술품이건, 연애의 주체이자 상대인 서로이건, 특정 대상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배경이 무채색인 폐쇄젹인 실내 공간'이어서라고 본다.
옛날에 유행하던 말이고, 지금 수도 없는 반례를 찾을 수 있긴 하지만, 대체로 백화점에는 창문 시계가 없다고 한다. 물론 요즘 백화점엔 창문과 시계가 없지는 않지만 그다지 많지도 않은데 공간 내부에 있는 사람이 바깥 상황에 둔감하게 만들어서 공간 안에서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럴 것이다. 미술관 역시 오로지 그 미술품에만 집중해서 관람하도록 만든 전용 공간 이라는 점에서 역시 외부와 연결되는 창문 시간을 드러내는 시계를 배치하지 않는다.
결국 미술관이나 백화점은 모두 외부 세계와 분리된 독자적인 하나의 폐쇄적인 공간이자 세계이다. 이에 백화점과 미술관에 있으면 그 공간 내의 물품이나 데이트 상대에 집중할 수 있다. 미술관과 백화점이 예술품 전시 공간이자 상업시설이자 데이트 코스로서 훌륭하게 역할할 수 있는 이유다.
III. 그렇다면 왜 백화점 건물 내부에 미술관을 설치하는가?
그렇다면 적지 않은 백화점이 그 안에 미술관을 두는 이유가 뭘까? 나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고 본다.
(1) 고급스러운 물품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추며 동질적이라서
첫 번째는 두 공간이 동질적이기 때문에 조합이 잘 맞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예술품이나 백화점에 전시하는 상품이나 모두 심미적인 형식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상업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백화점을 총체적으로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물건'을 다루는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상품으로서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제품이든 한 작가가 고도의 창의성, 독창성을 발휘해서 탄생시킨 예술품이나 넓은 의미에서 모두 고급스러운 아름다운 오브제로 바라보며 백화점은 이러한 물건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상업적 이득을 꾀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상업적 이득을 꾀하는 것인데 백화점은 개별 점포에선 물품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얻고, 혹은 본부는 점포에 임대를 내줌으로써 수익을 얻는다. 백화점 내에 미술관을 유치하면 전시장에 방문하는 관객 가운데 점포를 스쳐 지나가면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살 여지가 있다. 따라서 점포를 유치할 때 훨씬 더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백화점 본부는 미술관에서 입장료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즉 수익성을 근거로 미술관을 유치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3) 경제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의 상호 결합
앞서 얘기한 바는 백화점과 미술관의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물품을 다루는 무채색적 배경을 지닌 폐쇄적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고급스러움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데 백화점에서 파는 물품은 가격이 비싸 경제적 진입 장벽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고급스러움인 반면, 미술관의 예술품은 고도로 코드화되어 문화적 소양이 있어야 이해 가능하는 데에서 오는 고급스러움이다. 물론 앞서 얘기한 대로 미술관 역시 그 그림을 꽤나 비싼 가격에 판다는 점에서 경제적 진입 장벽이 있으며, 백화점에서 파는 물품 역시 어느 정도 명품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진입 장벽이 있으나 그 경중에 따라서 그 고급스러움의 근거를 달리 볼 수 있다.
결국 백화점이 미술관을 설치하는 이유는 경제적 요인에 의한 고급스러움과 문화적 요인에 의한 고급스러움이 서로 어우러져 총체적으로 고급화된 물품을 다루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위한 용도로 이해할 수 있다.
IV . 백화점과 미술관의 관계를 내가 주장하는 음악 분류론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하자.
1. 백화점과 미술관을 음악의 각 장르로 비유하기
지금껏 백화점과 미술관을 동질적인 입장으로 보느냐, 이질적인 입장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근거하고 있는 미학관에 차이 있다고 얘기했다. 즉 양자를 이질적인 공간을 보는 입장에서는 예술 작품의 심미성을 강조할 것이고, 동질성을 얘기하는 입장은 예술의 기능성, 역할 수행 및 사회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음악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작업 중에 하나가 음악을 특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제도적으로 장르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의 학체가 대중 음악, 한국 전통 음악, 서양 클래식 음악으로 분류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때 특별히 대중 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분리를 강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미학관의 차이에 따라서 입장차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예술 작품에 있어서 심미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클래식 음악과 대중 음악을 각각 순수한 심미적 체험의 대상과 상업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엄격하게 구분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예술 작품에 있어 사회와의 관련성 속에 이해하는 입장은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은 모두 현실에서 학술 연구 대상, 심미적 체험, 집단 내의 결속 등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둘 사이에 차이보다는 동질성을 중심으로 이해하며 현재 한국의 장르를 중심으로 엄격하게 분리한 음악 학제에 비판적일 가능성이 높다.
2. 오늘날의 백화점 속에 미술관이 위치한 것은 음악으로 어떻게 비유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대중 음악과 클래식 음악이 꽤나 동질적이라고 보는 입장이고, 둘 사이에 결합 및 융합을 하는 실험적인 행보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백화점 안에 미술관이 있는 것을 음악으로 비유하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연주회 프로그램' 내에 '재즈 레퍼토리'와 '클래식' 레퍼토리가 '병존'하는 것으로 본다.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을 팝이나 록 같은 일반적인 대중 음악이 아니라 재즈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백화점의 물품이 갖는 상업성과 동시에 고도의 심미성을 갖췄다고 얘기했는데 이것이 상업적인 대중음악인 동시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춘 예술 음악으로도 이해되는 재즈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백화점에 설치한 미술관이 있는 것을 재즈 양식과 서양 클래식 양식이 결합한 실험적인 '하나의 음악 작품'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연주회 프로그램'내에서 그 레퍼토리가 병존하는 것으로 비유한 이유는 백화점 안에 미술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같은 건물 내에 위치한 것일 뿐이지 서로의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과 재즈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실험적인 곡은 예술가와 콜라보레이션한 한정판 상품이나 박물관이나 미술관 내에서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굿즈로 비유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3. 백화점과 미술관의 상호작용을 각 음악 장르간의 상호작용으로 비유하기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백화점 안에 미술관이 있는 것을 어색하다고 생각 안 할거라 본다. 그것은 고급스러운 재즈 음악과 서양 클래식 음악을 모두 넓은 의미의 예술 음악으로 보는 입장이 요즘은 우세해진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 아웃렛 상점에 미술관을 유치하는 것은 사람들이 어색하다고 볼텐데, 이것은 비유컨데 일반 팝 음악과 클래식 음악 사이의 심미성과 미적 퀄리티에는 그래도 여전히 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는 입장을 비유할 수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와 컬래버레이션한 한정판 상품에 열광하고 미술관 구석의 샵에서 파는 굿즈 좋아하는 것을 봤을 때, 재즈와 클래식 음악의 요소가 섞인 거슈윈, 카푸스틴 등에 대해서 열광하는 것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재즈, 팝, 록, 클래식, 국악의 구분을 해체하는 급진적인 학제 개혁 주장하는 것엔 거부감이 들텐데 이는 백화점과 미술관과 아웃렛을 해체하며 하나의 상점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현재처럼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교류가 거의 없는 장르별로 구분된 음악 학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그 구분이 아예 문란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점 형태 중에 편집샵이 있는데,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게의 형태가 바로 이 편집샵이다. '엔틱한 골동품 같으면서도 최신형의 디자인 감각이 살아있는 물품이 자유롭게 배치된 공간으로서의 편집샵.'
V. 결론: 내가 꿈꾸는 음악계 - 편집샵
난 편집샵 같은 음악회에서, 편집샵에서 파는 힙한 물건과 같은 실험적인 음악이 번성하는 대한민국 음악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곡 구성이나 형식에 있어 기존의 엄격함에서 탈피해 자유로우면서 세련되게 결합한 창조적인 음악이 넘쳐 흐르는 음악계 말이다.
물론 그 길이 쉽지 않은 건 안다. 처음부터 여러 장르의 음악을 융합하면서도 그 기원을 추적하기 어렵고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것인 양 기가 막히게 결합하는 편집숍의 힙한 제품과 같은 음악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융합을 해내야 하는 것이 예술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첫 출발이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교차하는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루이비통이 야요이, 걸그룹 뉴진스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콜라보레이션 하듯이 말이다. 혹은 앤디 워홀이 마트에서 파는 통조림 수프 디자인을 소재로 실크 스크린 작품을 찍어내듯이...
블랙 핑크가 라 캄파넬라를 샘플링하고 BTS가 대취타를 인용한다. 이날치와 씽씽은 판소리와 경기민요를 락 비트에 맞춰 노래한다. 수많은 인디 음악가는 고독함을 견디며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면 스타가 되길 꿈꾼다. 케이팝과 국악 그리고 인디음악계는 경계를 넘나드며 나름대로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행보를 보인다. 이제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여타 음악계의 행보에 호응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작품으로 대답할 차례다.
오늘 백화점을 아이쇼핑하다가 마주친 미술관을 보면서 든 의식의 흐름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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